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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권력 도래

기사승인 2020.03.26  04: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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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건양대에서는 변이 암 진료실에 50대 여성이 유방암 치료를 받은 여성 환자의 향후 진료 방향에 대한 진단이라는 것이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는 “환자에게 호르몬 치료나 방사선 치료보다 약물치료가 더욱 적합하다며 2/3주 간격으로 7/8번 진행되는 ‘압축강화치료’가 필수적입니다. 라는 Dr가 아닌 인공지능 Dr의 처방 진단이 나온다.

금요저널 주필/칼럼리스트/이승섭회장

이제 무인자동차가 내년이면 상용화를 위시해서 Dr의 역할까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정말 놀라고 전율할만한 시대의 변화가 우리 현실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무감각한 현대인의 의식에 따른 공포의 시대가 이미 도래 함은 물론이고 신생바이러스에 대처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인류문화 2천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욱 급속한 변화의 사이클이 단 몇 년 안에 과거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급격한 양상이 우리 앞에 전개됨에 두려움까지도 갖는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어둠의 길이 열리는 느낌이다. 이는 현실이고 또 그 현실은 이미 상상의 궤도를 넘어 실현의 길이 열리고 있다.

참으로 신권에서 왕권으로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다수 참여의 이동에서 인간의 권력 구조는 확실히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제 21세기에 이르러 권력은 여러 면으로 분권화되는 과정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민주주의 초기에는 집권자가 상당한 위력을 갖고 진행 되었지만, 점차 권력이 언론과 공유하는 형태에서 다시 의회 권력에서 점차 종교 권력도 끼어들게 되었다.

권력의 다변화의 와중에 와글거리는 사회의 변화는 심각한 휴유증과 갈등을 양산하게 되었고 다시 새로운 권력의 등장이 예고되는 듯하다. 9단의 바둑고수와 알파고라는 로봇과의 대국은 처음에는 의심을 모두 했지만 결국 일방적인 로봇의 승리는 인간의 문화에 경악을 안겨주었으니, 이 사건은 새로운 기계 권력의 등장이 임박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일대 전환의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이후 현란하게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기계에 대한 뉴스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일상적인 변화로 받아드리는 경지에 와있다.

이제 글도 컴퓨터 자판으로 쓰지 않고도 말만하면 쓰여 지는 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빠른 시대에 변화가 새로운 변화를 유발하고 있다.

신을 팔았던 중세기나 이후 인간으로 권력을 집중화 시킨 왕권의 시대나 보편의 가치를 중히 여긴 산업혁명 이후 민주라는 판도에서 권력은 다양한 사회 구조에 권력의 맹아<萌芽>는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우후죽순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입법, 사법, 행정, 점검뿐 아니라 언론도 그들 나름의 보호막을 치기 위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중요한 수단의 길을 가고 있고 정보 매체의 다양성이 결국 언론이라는 권력을 비대하게 키워지는 단계가 와있는 것이다.

이는 정보의 필요성이 인간의 삶의 질을 다양화하고 또한 상승 시키는 기대치와 등가<等價>를 형성하면서 영향력의 비대는 점차 왜곡된 정보가 섞이면서 불신의 길도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이는 인간의 판단 명확성과 비례하는 면도 사실이지만 우둔한 인간에게는 뉴스라는 위력이 믿음을 형성하는 오작동의 쟁점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라는 장치에 문제점의 관건으로 되어 질 것이다.

오늘날 종교의 퇴락은 종교 자체의 비대증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진리를 위해 종교가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위해 종교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포장되기 때문에 종교의 상품 가치는 점차 쇠락의 길로 내려가는 속도가 빠르게 보인다.

왜냐하면 종교가 자기들만이 구원의 증명서를 판다고 믿으라 하지만, 이러한 편견의 주장이 잠시 신앙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하드라도 이내 갈증을 위무하는 역할이 없다고 느낄 때, 신자는 떠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대인들의 방황은 이미 허무의 깊이로 들어가는 사실에 아픔을 주고 있다. 이는 종교가 권력의 맛을 보았고 이로 인해 스스로 하향길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필자는 여기서 인간의 제도가 어디까지 유효할 것인가를 자문해본다.

다시 말해서 기계가 기계를 만들고 이제 기계가 인간을 복제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연 로봇이라는 이름의 문화는 인간의 정신 영역을 어떻게 변화 혹은 지배하는 무서운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인간의 미래는 위기이자 새로운 돌파구나 나올 것인가를 생각하는 지점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인간의 진리는 수시로 변하고 기계의 진리는 일정불변일 때, 이 둘의 상관은 정립할 수 있을 것인가부터 생각의 길이 나타내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역시 진리의 목마름은 인공지능과 어떻게 정립하는 단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인공지능은 목마름이 있을 수 없다는 냉혈적인 체온을 생각하곤 한다.

여기서 인간의 문화는 새로운 페러다임을 구축하는 시대로 들어가야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순의 실타래를 만들면서 또 그것을 풀어나가면서 진리 찾기의 갈증이 존재하지만, 인공지능은 항상 같은 체온에서 갈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생각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상관에 초기 단계의 문제점의 도출일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인공지능 또한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사고하는 단계가 속도로 진전한다는 가정을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모든 정신 데이터를 총합으로 구축하고 다시 한 단계 앞으로 앞선 예지를 갖출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과 인공지능의 싸움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면 인간은 실패의 쓰디 쓴 노예로 전락하는 상상은 분명 비극이다.

어쩌면 파우스트의 고민은 나타날 것이고 돌파의 기회가 어찌될 것인가는 바로 인간 자신의 정신에서 해답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여기서 인공지능의 권력의 한 축을 바라보는 우울함이 다가드는 것은 왜일까?

이는 과거와의 단절이어도 아무런 불편이 없는 시대요.

진리의 새로운 페러다임이 나타나면서 공존의 협정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인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간은 영리하고 미래를 보는 눈이 잠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요저널 주필/문화연구위원/칼럼리스트/이승섭회장

그러나 인공지능 또한 무서운 속도로 앞질러 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권력이라는 용어가 아직은 생소하고 낯설고 하지만 이미 우리 인간 앞에 닥아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인간의 다양한 문화는 점차 단순화의 길로 통합될 여지가 충분하기에 -

2020. 03. 26.

금요저널 주필/문화연구위원/칼럼리스트/이승섭작가

AI 시대의 도래

홍옥경 기자 thesejongtv@daum.net

<저작권자 © 금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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